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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한유주/숨] 어떤 죽음은 아프고, 어떤 죽음은 추상적이다.

어떤 죽음은 아프고, 어떤 죽음은 추상적이다. 글 속에서 수없이 쏟아지고 나열되는 죽음의 모습들, 나는 그저 머릿속 깊숙한 허상의 공간에서 그것들을 떠올렸고 잠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없어질 마음들이었다.

"나는 늘 그렇게 내 것이 아닌 모든 죽음을 방치했고, 지나쳤고, 잊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p.44, 책 속에서

내게 어떤 죽음은 매우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내 것이 아닌 죽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곁의 누군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두려움이 반복될 때 모순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점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또 어떤 죽음은 아팠다. 가까운 사람이 떠났을 때, 돌봐주던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가 그랬다. 바꾸어 말하자면 '내 것에 대한 죽음'. 또 바꾸어 말하자면 내 것'이었던' 것들의 죽음.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것은 전과는 다르게 또렷하고 선명했다.

"그니까 내가 너의 죽음에 대해 써도 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고 싶었다, 네가 죽기 전부터." - p.64, 책 속에서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세상을 떠난 것들에 대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할까. 빈자리는 커지는데 마주할 일상은 그대로다. 그만 묻어두고 힘차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계속 떠올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내게 말이라도 해주고 떠났다면 좋았을 텐데. 누구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데, 죽은 사람/것은 말이 없다.

한유주의 소설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죄책감과 회피를 오가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동안 생각했던 부끄러운 마음을 인정하고 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어쩌면 가상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늘 그랬다.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하고 아픈 내면을 적은 일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동시에 공감하며 애써 부정했던 우리의 아픈 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내게 어떤 죽음은 아프고, 어떤 죽음은 추상적이다. 모든 죽음이 아프다면 그것 또한 어둡고 힘들겠지만, 추상적이었던 것들이 무감각하거나 무뎌지는 일이 되지 않도록 아낌없이 그들을 생각하고 추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