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선정이유]

작년 독서모임 책을 고를 때, 예스24에서 권남희 번역가의 서재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양질의 우리말 충천용 배터리! 라는 데다 사전만큼이나 자주 봤다니 어떤 책일까 궁금해서 바로 구매했었어요.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시옷으로 시작하는 낱말로 써낸 산문집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인이 쓴 책인만큼 '시'에 관한 스토리도 있다기에 함께 읽고 얘기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저보다는 여러분이 시를 더 잘 알고 좋아하기에 크크... 여러분은 저에게 이용당했습니다...
[독서 소감]
가볍게 읽을 줄 알았는데 기대보다 어렵고 좀 더 딥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한 번 읽고 덮어 놓기에는 아쉬운 책인 것 같아요. 번역가가 왜 그렇게 여러 번 읽었는지 이해도 됩니다... 시간될 때 좀더 곱씹어 읽고 싶네요...
왜 시옷이었을까, '시'와 연관짓기 위함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읽는 내내 시인으로서의 자세나 숙명이라 할 것들을 상기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돌아보는 게 참 멋있고 부러웠습니다... 자신만의 새로운 정의를 하는 것도... 필사하기에 정말 좋은 책 같아요.
[인상깊었던 구절]
미안함과 고마움이 오래 교차될 때, 나는 그리움이란 직물을 직조해낸다. 혼자만의 방에서, 이 직물에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귀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 직물을 무릎담요처럼 덮고서 나는 시를 썼다.
금세 사라지고 말 것들에 렌즈를 들이대며,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을 언제고 이렇게 부지런히 기록해두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22p
단풍은 어째서 푸른 잎사귀와 다른지를 두고서, 과학자는 영양분의 이동 방식을 찾아냈고, 식물학자는 떨켜라는 새로운 호명을 찾아냈고,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 버린다는 것은 곧 아름다워지는 것임을 입증했다. -45p
살피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어쩐지 마음을 간식 정도로 생각하는 말 같다. 마음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은 살피는 게 맞다. 마음을 따르고 싶다면 마음을 살피면 된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보살피면 되듯이. -51p
채워 넣고 채워 넣는 것으로 평생을 보냈을 엄마의 하루하루가 난데없이 몰려와서, 그릇만 물끄러미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허기가 포만감처럼 밀려왔다. 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담긴 슬픔들이 국그릇 엎어지듯 쏟아졌다. -62p
온전히 그 맛을 육체로 받아들여 음미하고 식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나는 특히 나의 모국어가 좋다. 내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이 그 맛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때론 짜릿하기까지 하다. -99p
타인에겐 무심과 배포의 소산인 듯 보이겠지만, 실은 무뚝뚝함은 소심과 서투름의 결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손해를 부풀릴 수 있는 결함 중의 결함이다. -107p
흘리는 건 눈물이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손짓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누군가를 찾는. 125p
그해 여름에, 그해 겨울에, 나는 혼자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었고 무언가를 주웠다. 사소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물로 가져와 간직하며 지냈다. 어떤 것은 추억을 직조해주었고 어떤 것은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 아픈 것들은 내내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 내가 그 사물과 만난 것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지만 사소한 일들은 마음 아픈 일일수록 운명처럼 커다래진다. 주워 온 사소한 사물들을 내가 간직하는 것은 추억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이 이토록 커져간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144p
미안하다는 말에 고맙다는 뜻이 전혀 함축되지 않은, 진짜 미안하다는 그 말은, 거짓말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러니까 우리가 구축한 거짓말의 세계는 이미 끝이 났다는 뜻이다. -162p
누구에게나 자기 한계는 주어져 있다. 이것에 주목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시선이라고 한다면, 자기 한계를 기회로 받아들여 입장을 갖추기 시작하는 지점을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야라는 것은 시선과 시점이 새로운 작용을 낳는 능력이다. 시선은 관심으로, 시점은 입장으로, 시야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시선을 통해서는 나를 다시 보고, 새로운 시점을 통해서는 당신을 다시 보고, 새로운 시야를 통해서는 세상을 다시 본다. -194p
[작가/작품 리서치]
Q. 시인은 소설가와는 또 다른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인으로부터 “낯선 자리에서 시인이라고 소개 받을 때의 당혹스러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A. 어디를 가더라도 웬만하면 시인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요. 머리가 짧다 보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 가는데,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이 직업을 물어보실 때가 많아요. 사람마다의 헤어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서죠. 옛날에는 순진하게 문학을 한다고 답했더니, 지나치게 위엄 있게 잘라주더라고요. (웃음) 그 다음부터는 발레리나라고 하기도 하고 포토그래퍼라고도 말해요. 여행을 가서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시를 쓴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거짓말을 많이 하고 다녔죠. 제가 시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것은, 괴짜 취급을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괴짜 취급이 편한 면도 있어요. 시인으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시 쓴답시고 주변사람들에게 허용 받은 게 되게 많았던 것 같거든요. 그들이 관용을 좀더 열어둔 채 저를 대해주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룰을 안 지키고 조금 제멋대로여도, 자연스레 안착되지 못하고 다소 이상하게 굴어도, ‘시인이니까’하고 받아들여줄 때가 있었어요. 그런 종류의 혜택을 많이 누리며 살았다고 생각해요.
Q. 평생 시를 쓰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에 어떤 시인이 되어 있을까요?
A. 맨 처음 시를 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이걸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인가?’ 이런 계산은 아예 안 했어요. 헤아림 자체를 아예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5년 정도 시를 쓰다가 시집 한 권이 나오면 요절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 해요. 할 겨를이 없기도 하고요. 다른 직업을 가진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나이가 60세가 되면 뭘 하고 살 거다” 같은 이야기를 벌써부터 해요. “너는?”하고 나를 쳐다봐요. (웃음)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이 불필요해 보여요. 지금 당장 내가 감응한 것들을 시에 어떻게 쓸지,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변에서 나를 위태롭게 생각한다는 게 느껴져요. 우리가 미래에 뭘 하겠다는 그림을 근사하게 그린다고 해서 그것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 닿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마도 형식적으로는요. 그 내용까지 꿈꾸던 것일 리는 없어요. 미리 절망하고 있는 편이기도 한데요. 미래에 대한 그림 자체를 그리지 않아요. 미래라는 시간을 생각해야 할 사람은 그 미래라는 시간을 살아갈 미래의 나예요. 지금의 나는 아니에요. 오늘만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게 다예요.
Q. 언젠가 시에 대해 ‘비밀을 받아주는 장소’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A. 한 문예지에서 ‘내 시의 비밀’이라는 열쇳말로 시인들이 시론을 연재했어요. “나의 시에는 비밀이 없는데, 왜냐면 내 시가 내 비밀을 다 받아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썼어요. 현실에서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 말이 되지 않는 것들, 대화에서 누락된 것들,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을 시에다 말한다고 썼어요. 말해도 되나 싶은 것들을 시에다 제대로 적어두고 싶어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선연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시인은 시 속에서 얼마든지 아슬아슬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 순간이 가장 특별한 순간이에요. 마음껏 아슬아슬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아요.
Q.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나는 시인인데 산문집이 더 인기가 있을 때, 속상하거나 서운한 마음은 없나요? 소설가들도 유독 에세이가 더 잘 팔리고 사랑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요.
A. 소설가 같은 경우는 둘 다 산문이니까 뭐가 더 사랑을 받고 상업적으로 반응이 있을 때, 소설과 산문이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시와 산문이니, 경우가 좀 다르겠죠. 내 산문집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은 대부분 내 시집도 읽고 산문집도 읽은 게 아니라, 산문집만 읽은 경우예요. “둘 다 읽었는데, 시집은 후진데 산문집은 좋더라”라고 여길 리가 없어요. 그럴 리는 없어요. (웃음)
[발제]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시인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은 오롯이 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져... 평소에 책에서 공감되는 이야기를 많이 꼽아 보고는 하는데요, 이번에는 -이건 나랑 다르다, 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싶은 부분을 꼽아 보면 어떨까요? 자신만의 정의로 또 다르게 이야기해 봅시다.
[대화 주제]
- 목차를 읽었을 때 어떤 낱말이 가장 기대되었나요?
- 다 읽고 나서는 어떤 낱말이 가장 좋았나요?
- '타인에겐 무심과 배포의 소산인 듯 보이겠지만, 실은 무뚝뚝함은 소심과 서투름의 결합이다.'라는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꽤 공감갈만한 문장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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