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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나목/박완서]

[책 선정 이유]
올해가 박완서 작가의 타계 15주기라고 해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많은 도서 홍보를 했는데요.(부끄럽지만 타계라는 단어를 처음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더 관심이 가게 되었고, 싱아 이후로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더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나목을 고르게 되었는데요. 작가님의 첫 작품이기도하고, 서점에서 마주치면 늘 들었다가 놓았던 책이어서 이번기회에 읽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가로 홍경의 왓츠인마이백 소개에서도 나목을 꺼내 소개하더라고요.. 이거 재밌나보다! 하고 바로 골랐어요.

[독서 후기]
일단.. 제가 생각한 분위기는 이런 로맨스?물은 아니었는데 너무나도 사랑이야기라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적으로 눈 흐리고 봐야할 구간들도 있었는데요...남자 작가였더라면 중간에 덮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일단 뭔가 생각보다 홍상수(?) 느낌의 내용이라 사실 조금 실망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나이많은 남자와 사랑하는 젊은 여자 이런 설정들도 저는 크게 좋아하지 않고, 그렇다고 태수가 서브 남주로서 아주 괜찮은 남자였느냐 하면.. 뭔가 아쉬운점이 있었던거 같고요. 하지만 주인공이 한국전쟁시기의 스무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런 어리숙한 마음이나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내면같은 것들이 그 시대의 분위기와 뭔가 딱 들어맞는 내용같기도해요.
그리고 주인공뿐만아니라 전체적으로 다른 인물들도 다들 모순적인 부분을 가지고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비겁하기도하고.. 뭔가 불안정적이라고 할까요... 이런 인물들의 특성들이 '나목'이라는 제목과도 좀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나목 자체도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생기가 있는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나무니까요.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어도 이렇게 후기를 정리하다보니 그 지점들이 뭔가 작품이랑 완벽하게 잘 어우러진 것도 같아요.
박완서 작가님의 첫작품을 완독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다른 작품들도 또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추가로..딴소리지만 갓댐철원 갓댐양구 나올때마다 너무 웃겼음,,ㅋㅋㅋㅋ)

[인상깊은 구절]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p.22

-나는 내가 도저히 견제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많은 '나'의 제멋대로의 아우성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아우성들을 간추린다거나 억누를 생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이 그 아우성들에게 나를 조금씩 나누며 빙빙 어지럽게 맴을 돌고 있을 뿐인 것이다. p.201

[작가/작품 리서치]
-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의 시기를 살아냈다. “이것을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숙부와 오빠 등 많은 가족이 희생당했으며 납치와 학살, 폭격 등 죽음이 너무나도 흔한 시절이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가족들을 개별적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처음 글을 쓴 목표였다. 그러나 막상 글을 통해 나온 건 분노가 아닌 사랑이었다. 그는 글로써 자신을 치유해나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전반적 문제, 가부장제와 여권운동의 대립, 중산층의 허위의식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직간접적으로 의식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문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13133
Q.글을 쓴다는 건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내게 글을 쓴다는 건 내 고통의 일부를 독자에게 나누는 거예요. 내 고통을 글로 옮기면서 내가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죠.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짐을 하나씩 놓아버릴 수 있었어요. 힘들 때를 살아갈 힘도 글쓰기에서 얻었죠.

Q.어딘가에서 선생님은 극복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하신 것이 기억나는데요.
A.아픔과 슬픔은 전혀 극복할 수 없는 거예요. 슬픔을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참고 견디고 사는 문제죠.

Q.그럴 때 글을 쓰면 그런 아픔이 사라지게 되나요?
A.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지만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죠.

Q.그럼 선생님은 독자에게 고통을 나누어주는 셈이 되나요?
A. 책을 읽으면서 그 고통을 가진 사람도 나처럼 가벼워질 수 있겠죠.

Q.그럼 언제쯤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A.6.25를 겪고 나서였어요. 그때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로 쓰자고 생각했어요. 나는 경험으로 글을 썼어요. 고통스러운 경험은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게서 물러나지 않아요. 전쟁이 끝나고 결혼해서 평온하게 살아갔던 몇십 년은 오히려 짧게 느껴지고 6.25 때 겪었던 몇 달간의 경험이 더 길게 느껴져요. 아이를 키우며 평온하게 살 때도 잠이 들면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예요. 그 기간이 굉장히 길게, 내 삶 전부처럼 느껴졌어요.

Q.특히 6.25를 배경으로 쓰신 작품을 보면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프리모 레비도 그랬지만 덜 선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A. 그런 죄책감도 많이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썼을지도 모르죠. 평화로울 때보다 빈한할 때 인간의 악이 더 잘 드러나잖아요. 굶어 죽지 않으려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남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자를 단죄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잊어버려야지, 잊어버려야지 하면서도 계속 그때 이야기를 쓰게 되네요. 손자는 저보고 요즘 누가 6.25 때 이야기를 읽느냐고 ‘할머니 그만 쓰세요’ 그러지만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다들 그렇게 과거를 금방 잊을 수 있는지 그게 더 신기해요.

Q.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참 꼬장꼬장하고 결벽에 가까울 만큼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타고나신 성격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아니면 개성 사람의 기질인가요?
A.우리 집안 내력이에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소리는 다 하는…. 개성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죠. 제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을 거부했어요. 그때는 독립투사 자녀도 혹시 표적이 될까 봐 창씨개명 할 때였는데 제 할아버지가 죽어도 창씨개명은 안 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건 우국충정과는 또 다른 거였어요. 우리 집안이 독립운동을 하는 그런 집안은 아니었거든요. 평범한 소시민 집안이었는데 창씨개명을 절대 안 했어요. 해방 후에도 거기에 대해 한 번도 내세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대화주제]
- 주인공이 px에서 일하면서 미군들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서, 거구의 외국인 남성들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당차고 씩씩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사랑앞에서, 가족앞에서는 어쩐지 연약한 느낌도 들어요. 여러분은 주인공을 어떤 느낌의 여성으로 보았나요?

[발제]
- 옥희도가 그린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고목(枯木) 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나중에서야 그게 나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옥희도가 그린 나목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잎이 다 떨어지고 황량함만 남은 절망적인 상태를 말하고싶은 걸지, 아니면 봄이되면 다시 싹을 틔울 가능성이 있는 상태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