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소설을 쓸 때 계속 남는 말들,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찌꺼기 같은 마음들, 좋아하는 데 서운하고 싫은 데 보고 싶은 양가 감정 같은 것, 나랑 다른 데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되게 궁금해하거든요. 왜 그런지 혼자 상상하다가 나름대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정리를 해보자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몇 년 동안 쓴 소설의 묶음입니다.
<책 선정이유>
김화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그의 등단작에 대한 호기심이 한 켠에 있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와중에 문화일보 사이트에서 ‘나주에 대하여’를 짧게 오려온 글이 있었고, 그 글을 읽고 책을 사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제가 ‘쇼코의 미소’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성만 느낄 수 있는 여성 간의 오묘한 관계와 그 사이 여러 갈래의 감정을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점이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나주에 대하여’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던 상황이라 이 책을 읽어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짧은 독서 소감>
사실 초반부에 한 두 챕터 정도를 읽고 온점에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머지 챕터들을 더 읽다보니 ‘약간 딥한가? 혼자 읽을걸 그랬나?’ 싶기도 했네요. 가볍게 이야기 해봅시다.
<+ 돌이켜보는 독서소감>
‘김화진 작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김화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 표현이 더 맞다. 다들 그럴 것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대학교를 다녔고,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에 출연하며, 말솜씨가 좋으며 대범해보이고, 큰 출판사에 근무하며 동시에 신춘문예까지 등단한 사람이다. 관심이 안가기가 어렵다. 이렇게 나는 이 사람에 대한 관심을 우선적으로 가지고, 그 관심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경우가 잦다. 그 사람이 좋아지만 그 사람이 쓴 작품은 더 쉽게 좋아진다.
그 사람을 연예인처럼 몰래 감상하고, 곱씹으면서 으레 그에 대해 가지게 된 이미지들이 있다. 그는 주관이 뚜렷할 것이다. 그는 말을 담기보다는 뱉어낼 것이고, 그런 사람이 쓰는 소설은 어쩐지 사회고발적이고 버석한 이미지일 것이다. 조금은 어려울 것이고, 장편 소설일 것만 같다. 그 예측은 대부분이 빗나갔다. 아주 멋있는 쪽으로 빗나가서 꽂혔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아보이는 사람이라, 이런 ‘못나고 찌꺼기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늘 너무 조악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서 내가 아주 별스럽고 별로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지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주에 대하여를 읽으며 공감되는 지점이 많아서 슬펐고, 조금 안도했나. 누군가 궁금하고 이 궁금증도 나만 그런가 싶어 답답하고, 마음이 어긋나며 원하는 곳으로 가지않고, 갑자기 한쪽으로 너무 삐쭉 치솟고, 내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이야기가 좋은 결말을 맺는 것을 보고 나는 그렇지 못함에 울고. 그랬다.
정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더 보고 싶다.
<인상깊었던 구절>
169p
하루 일과표가 잘 그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껏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온통 주현을 생각하며 가늠해보다가도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밑엔 내가 뭔데,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타인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순수하게 ‘저 사람을 모르겠다’는 마음이 가장 클 때가 아닐까, 막연하게 그렇게도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가끔 너무 무섭지 않니? 그것은 어느날엔가 희재가 했던 말이었다.
195p
혜인이랑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았지. 소울메이트가 있다면 그런 관계였다고 생각해. 물론 은주도 좋은 사람이지만, 혜인이와 나누던 대화를 은주와 나누진 못할 거야. 명백해. 그런 면으로는 혜인이가 압도적으로 우위지. 은주는 상식적이고, 건강하고, 자신의 소수자적 위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아. 거기에 매몰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라 좋아하게 된 거기도 하지.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혜인이와 헤어지고 은주를 만나겠다고 한 건 내 선택이고, 이 선택을 해버린 이상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은주와 후회 없을 관계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아. 혜인이와 나,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던 오랜 친구들. 그 세계를 죽이고 나 홀로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내가 살해자 내지 파괴자로 느껴져. 계속 혜인이를 만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시시각각 사무쳐. 마음이 맞는 그 느낌은 다시느낄 수 없겠지. 그 사실이 이렇게 참담하게 다가올 줄 몰랐어. 애인의 긴 답장. 그건 마치 잘못 보내진 편지 같다고 은주는 생각했다. 이걸 봐야할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애인의 친구도 아니고 애인의 전 여자친구인 혜인인 것 같다고.
200p
은주와 영지는 전날에도 내내 무덤을 봤고 다음날에도 또 내내 무덤을 봤는데, 은주는 그 모든 무덤을 바라보며 아름답고 또 무섭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전날의 무덤은 너무 커서 아름다웠고,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의 무덤은 너무 커서 무서웠다고 말했다.
<작가/작품 리서치>
- 작품 기본 소개: 『나주에 대하여』는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화진의 첫 책이다. 신춘문예 당선작 ‘나주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러 곳에 기고한 짧은 소설 6편과 미발표작 2편을 담았다.
- 작가 기본 소개: 신인 작가인 김화진은 민음사에서 한국문학을 담당하는 7년차 현직 편집자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와 한국문학 단행본을 출간하는 팀에 소속되어있다.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 김세희 작가님의 <항구의 사랑> 등을 편집했다. 남의 책을 만들던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서 자신이 낸 첫 책에 대해 그는 "편집자로 일할 땐 꼼꼼히 본 것도 '혹시 어딘가 잘못된 게 있지 않을까'하고 불안해 하는 타입"이라며 "편집자로서 겪는 불안을 남이 해주니까, 책을 만든 느낌이 안 든다"고 말했다. (남이 책을 내주니 너무 편하다, 라고 했다)
- 소설을 쓰게된 계기: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마지막 학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강의를 듣고, 2016년 입사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꾸준히 쓰고, 결과물이 쌓일 때마다 여러 공모전에 내기 시작했다. 3~4년 간 온갖 신춘문예에 이름 가운뎃 글자만 바꿔 소설을 냈고, 최근 2년은 모든 신문사 신춘문예에 빠짐없이 응모한 결과 2021년 신춘문예에선 ‘김세진’ 이름으로 낸 작품이 당선됐다. 그는 "'김화진'이라고 적혀있지 않으니까, 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못 믿겠더라"고 당시의 기분을 전했다.
- 문학동네에서 책을 낸 이유: 민음사가 아닌 문학동네에서 책을 낸 데 대해 김화진은 “문학동네가 가장 빠르게 결정하고 연락해왔다”며 “그리고 오히려 민음사에서 책이 나가면 ‘직원이라서 그런 것 아니야?’ 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회사에서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제 소설 이야기를 안했다”고 덧붙였다.
- 집필 의도: 저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세트로, 마음만으로는 마음처럼 안되는 관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좋아하면서 멀어지고 미워하면서 붙어 있게 되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나주에 대하여>를 쓰게 되었습니다. 80매 내외의 분량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먹었을 때,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했었습니다. 그때 저희의 (최선을 다했지만, 터무니없이 어설펐을) 습작을 읽은 뒤 최시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소설 못 쓴다, 하는 말이었는데요. 이상하게 그 말이 힘이 됐습니다. 마음껏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도 좋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쓰고싶은 주제: 앞서 얘기했듯 저는 대체로 현실에 발 딛고 선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요, 최근에는 신기하게도 거기에 환상을 한 방울 정도 넣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환상 동화, 환상 소설을 좋아하긴 했었는데, 그걸 쓰고 싶어지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말이죠(웃음). 계속해서 내가 이전에는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사람이 참 재밌다고 생각하게 돼요. 신기함과 동시에, 소설에 작은 환상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부 시절 들었던 환상 문학 수업을 모두 좋아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어셔 가의 몰락>, <장화홍련>, <모래 사나이> 같은 책을 읽고 비평 에세이를 쓰는 것이 좋았고, 이것에서부터 저의 작은 환상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피어났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소설 속에 환상을 쓰게 되어도, 앞서 말했던 관심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마음, 그것으로부터 멀리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직업적 보람을 느끼는 순간: 출간 전, 내가 지금 편집하며 읽고 있는 이 원고가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는 원고라고 생각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 외에도 출판사에서 일하면 크고 작은 보람이 있습니다만,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느끼는 보람’이라고 했을 때는 역시 근본적인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어디에도 선보인 적 없는 이야기를 작가와 함께 뚝딱뚝딱 만들고 있고, 아직 세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책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이 처음 읽게 되고,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 도서관에 구간 도서로 꽂혀 있다가도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을 들른 사람에게 ‘처음’ 읽히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길고 아름다운 이야기 같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기쁩니다.
- 📚출판업에 꿈을 가진 이들에게 하고싶은 말 : 출판계가 연봉이 적고 복지가 좋지 않아 선배 출판인들이 모교에 강연하러 가거나 하면, 출판 분야 취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여기 오지 마…….” “다시 생각해 봐…….”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간은 진실이고 얼마간은 농담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다른 쪽으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정말로 글이 좋고 책이 좋은 분들이 이쪽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정말로 한 사람의 의지와 안목이 많이 반영되는 곳이고, 흔들리면서 단단해질 수 있는 곳이고, 남의 것을 만들면서 자기 것을 확립해 갈 수 있는 곳이고, 그러다가 자기 것을 만들어 내게 되면 더할 것 없이 좋은 곳입니다. 동료로 만날 날을 기다릴게요. 이것은 진심입니다.
<발제>
관계에서 이름 짓기 어려운, 다른 것들과 획일화가 불가능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잦습니다. 이 책만 해도 모두 비슷한 화자를 내세우지만 매 챕터의 감정이 각기 다른데요. 각 챕터 마다의 화자의 감정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보며 같이 1. ‘이름 붙여보고’ , 이 중에 2. ‘내게 가장 가까운 감정은 어떤 챕터인지’ 두 가지를 이야기해봅시다.
<대화 주제들>
1. 하루 종일 출판사에서 일하고, 돌아와 혼자 글을 쓰는 일을 몇 년을 한 뒤 정말 자신의 책을 낸 작가님이 새삼 더,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건 그냥 궁금증인데 친구들이 글을 쓸 생각은 더 없는지 궁금해요. 쓰면서 해소되는 것이 있어 저는 다시 쓰기 시작해보고 있는데, 어떤가요?
2. 추천사에서 ‘이 완전한 짝사랑의 고백을 읽는 내 마음도 어느새 사랑이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짝사랑을 잘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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