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을 옮긴다. 생각을 적는다. 계단 한칸을 내려갈 때마다 한 줄씩 아니 계단 한칸을 내려갈 때마다 다섯글자씩 두드리거나 혹은 연필을 움직이거나. 그래서 무엇을 얻는가 얻어야하는가? 애시당초 얻기위함이 아닌데 나는 왜 자꾸 기억을 잃는가?
하지만 나는 착각하고 있음을 안다. 지루한 삶을 안다. 내게는 아무 힘이 없음을 혹은 너무 센 손아귀의 힘이 있음을 안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열매를 말하고 눈이 오는 계절을 말하고 발 언저리가 저렸던 일을 말하고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말하고 더는 어두워지지않는 밤을 말했다. 마음이 그 곳으로 향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 내가 이것을 입에 담으면 담을수록 의미가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애쓰는 마음이 들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그만두고싶은 기분이 사랑하기도 전에 사후를 생각하는 기분이 아무데도 갈 수 없어서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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