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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한유주/숨] 다만 내게 주어진

그래서 나는 어째서 모든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할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미리 회상하는지, 어째서 죽음 이후를 보고 싶은지, 어째서 지금 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그러니까 더는 분절할 수 없는 시간의 단위마다 깨닫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상담사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내 입이 멎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미리 각본을 쓰려고 하지 마세요.


죽음은 두렵지만, 죽음은 우리 삶에 없다. 죽음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야, 죽음은 우리 삶에 없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찰나 속에서 나는, 에멜무지로 엮어갈 뿐이다. 공기의 흐름도, 미리 쓴 각본도, 내일의 고민도. 우린 무엇을 보고 꿈을 꾸는지…, 우리의 추락은 어디 쯤에야 있는지